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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Lab - 나를 연구하는 실험실

생물학적, 심리학적 나이에 따른 최선의 가능한 자신 버젼

by 펄스트래커 2026. 1. 23.

중년의 어느 지점에서 반복되는 생각에 대해

5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경험해보고 싶은 새로운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개인의 게으름이나 일시적인 권태라기보다는, 반복되는 어떤 패턴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주변을 보면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은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이미 했던 말이다.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시작은 늘 다음으로 밀린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20대와 30대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지금부터 잘해내면 된다고 믿는다. 40대는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노동력이 되는 시기다.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간다. 개인의 시간 감각은 업무와 책임에 묻힌다.

50대에 들어서면 조금 달라진다.  이전의 선택들이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누릴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누리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사람도 있다. 이 시기의 불안은 막연하지만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다.

60대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기라고들 말한다. 불안을 잠재우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기.

 

이 흐름은 단순한 심리 변화만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생물학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나고, 특정 연령대에는 뚜렷한 변곡점이 나타난다는 연구들도 있다. 삶의 태도와 무관하게, 몸이 먼저 변하고, 그 변화가 인식과 사고를 끌고 간다. 이런 생물학적 변화는 결국 ‘나이 듦’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만든다. 그리고 그 인식은 삶을 바라보는 방향을 바꾼다.

 

나는 20대부터 40대까지를 비교적 치열하게 살아온 편이다. 자기관리와 성찰에 시간을 쏟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시도했고,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다. 그런데 부모의 죽음을 연이어 겪고 나서, 삶에 대한 생각의 결이 달라졌다.
죽음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기억과 기록뿐이다. 감각도, 감정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  이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바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를 계산하게 된다. 이때부터 목표의 형태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이 되겠다”보다는 “어떤 상태에 있고 싶은가”가 더 중요해진다. 

 

평화롭고 싶고, 여유롭고 싶다.
깊이 뿌리내린 오래된 나무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는 상태.
웃어줄 수 있고, 버텨낼 수 있는 상태.

 

그동안 몸을 갈아서 만들어낸 성취들이, 어느 순간 큰 의미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그에 대한 보상이나 안정감은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돌아보면,  ‘전략’은 있었지만 ‘철학’은 얕았다. 
비즈니스 전략은 있었지만, 인생의 전략은 없었다. 내 생각에 태도 정도만 있었는데, 그것은  "일단 후회하지 말자" 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불안 회피에 가까웠다. ‘후회하지 말자’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한 방어이기도 하다.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지 않을수록, 사람은 따라가는 데 능숙해진다. 트렌드, 기술, 자기계발, 생산성.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증거를 모으는 데 집중한다. 그것들은 일에서는 유효하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 흔들릴 때, 마음의 축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한동안은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하는 루틴이 삶의 중심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 루틴은 목적이 아니라 의무가 되어 있었다. 이루어진 것들은 있었지만, 감흥은 줄어들었다.

이후에  매슬로우의 욕구의 위계 구조를 다시 점검하며 방향을 수정했다. 아래가 허술한 상태에서 위를 쌓아 올리면, 결국 모래성이 된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체력, 안정, 일상, 리듬. 그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상위의 의미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지금은 다시 질문의 단계에 와 있다. 아직 책임은 많고,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새 출발을 선언할 만큼 가벼운 시점도 아니다. 이 나이대의 포지션은 무엇일까. 이미 달려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다른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이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목표를 다시 가져보려 한다.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삶의 바닥을 단단히 하기 위한 목표.

 

지금부터는 다시 1단계부터다. 그래야 상위의 욕구가 정말로 생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무한 루프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의 시작인지는 조금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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