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상하게도, ‘망한 시즌’은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한다.
- 매일 아침이 출근 전부터 이미 패배감이었던 시기
- 연락 오는 사람마다, 마음이 더 피로해지던 관계들
- “왜 나는 맨날 이렇게 흘러가지?”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던 때
그런데 조용히 되짚어 보면, 당신의 인생에도 분명 이런 시즌이 한 번쯤은 있었다.
- 아침에 가볍게 눈이 떠졌던 시절
- “그래도 이 길이 맞는 것 같아”라는 감이 어렴풋이 있었던 때
- 내 마음, 내 몸, 내 인간관계가 아주 완벽하진 않아도 “이 정도면 괜찮은데?” 싶었던 때
- 내가 그래도 이 길을 선택해서 다행이었다.
이 장은 그 시즌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그것을 “Apex 자아”라고 부르기로 했다.
1. Apex 자아: “아, 이게 나지” 했던 시즌의 나
한 번 떠올려 보자.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볼 때, 가장 ‘아, 이게 나지’ 했던 시즌의 나”는 언제였는가? 대단한 성취를 이룬 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 편이 더 정확하다.
-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완전 지옥은 아니었던 시기
-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이 허무한 자기 위안이 아니라 진짜로 어느 정도 믿어졌던 시기
- 내 일과, 내 선택에 작은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던 시기
그때의 나를 천천히 스캔해 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느낌이 떠오를 것이다.
- - 에너지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있었다.
- - 작은 일에도 집중이 더 잘 됐다.
- - 거울 속의 나에게 만족한 나의 표정을 봤다.
- - “그래도 이건 내가 잘하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 시즌에 살고 있던 나, 그게 바로 당신의 Apex 자아다.
Apex라고 해서, 완벽하거나, 인생이 술술 풀리던 버전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냥 “그래도 이 정도면 이게 나지” 라고 느껴졌던, 지금까지 살아온 시즌들 중 가장 잘된 회차의 나에 가깝다.
이 이야기는 당신에게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한 번은 살았던 그 “조금 더 잘 된 시즌의 나”를 먼저 다시 만나 볼 방법을 제안한다.
2. Apex BPS: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느껴지는 버전의 나
Apex 자아가 “내가 이미 한 번 살아 본, 가장 잘된 시즌”이라면, Apex BPS는 조금 다르다. BPS는 Best Possible Self의 약자다. 말 그대로,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잘된 미래 시즌의 나’를 뜻한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붙는다.
“변명 접고, 핑계 걷어내고, 내가 가진 잠재력을 끝까지 돌렸을 때 아주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잘된 버전.”
여기서 중요한 건 “천재가 되는 나”,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는 나” 같은 판타지가 아니다. 대신 이런 느낌에 가깝다.
- 건강: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체력과 리듬
- 관계: 나를 소진시키는 인연 대신, 서로를 조금씩 더 괜찮은 쪽으로 끌어올리는 사람들과의 연결
- 일: 월급날만 버티는 직장이 아니라, “이 능력은 내가 꽤 잘 쓰고 있다”는 감각을 주는 일
- 자기 존중감: 잘하는 날이든 망한 날이든, “그래도 나는 나를 그대로 안아주고 인정한다”는 기본선
이 네 가지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지 않고 어느 정도 균형 잡힌 버전. 그게 바로, Apex BPS다.
- “사실 진짜로 신경 쓰면, 이 정도까지는 할 수 있는데…”
- “이 사람들과 이 정도 거리에서 지내면, 나는 꽤 숨통이 트이는데…”
- “이렇게 일할 때의 나는 그래도 좀 괜찮은데…”
- “이런 마음이 계속된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그 “대충 감이 오는 나”가 바로 Apex BPS로 가는 나 자신의 그림이다.
3. 중요한 전제: 지금의 나는 Apex가 아니다 → 망했다(X) / 아직 덜 맞춰졌다(O)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의 내가 Apex가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 ‘지금 행복하지 않다 = 내가 잘못 살고 있다’
- ‘지금 만족스럽지 않다 = 나는 뭔가 크게 실패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냥 아직 내 진정한 버전으로 가는 길에 덜 맞춰진 버전일 뿐이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정확히 맞지 않아서 계속 지지직거리는 상태처럼 말이다. 너무 큰 실패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닌 어딘가 계속 미세하게 어긋난 느낌. 이건 “틀렸다”가 아니다. “주파수가 아직 Apex 쪽에 정확히 맞지 않았다” 에 가깝다.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잘못되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바뀔 힘을 잃는다. 반대로, “지금 이 버전은 그냥 덜 맞춰진 회차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면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다.
- 그렇다면, 내 인생의 Apex 자아는 어떤 시즌이었지?
- Apex BPS, 그러니까 내가 진짜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잘된 미래 회차는 어떤 느낌일까?
- 지금의 나와 그 버전의 나 사이에는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가 지금 잘못됐다”는 비난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최고의 너와 주파수를 맞추는 방법”이 중요하다. 지금의 나를 고치는 작업이 아니라, 이미 어딘가에 있는 가장 잘된 회차의 나와 슬쩍 동기화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4. 심리학적 힌트: “최선의 자기상(Best Possible Self)” 실험
여기서 한 가지, 심리학에서 나온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이런 과제를 줬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잘된 미래의 자기 모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보세요.”
-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 어떤 몸 상태인지
- 하루 일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 그때의 내가 어떤 기분인지
그냥 막연히 “성공한 나”가 아니라, 냄새와 소리까지 떠오를 정도로 구체적인 장면을 적게 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이 사람들의 변화를 추적했다. 결과는 의외로 단순했다. “미래의 최선의 나”를 구체적으로 그려본 사람일수록 실제 행동 변화와 삶의 만족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올라갔다. 이 실험이 말해주는 건 거창한 비밀이 아니다.
- 우리는 생각보다 더 “그림”에 끌리는 존재라는 것
- 뇌는 “현실”보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이야기”와 “이미지”에 먼저 반응한다는 것
내가 매일 떠올리는 미래의 자화상이
“어차피 안 될 나”인지,
“그래도 이 정도는 해볼 수 있는 나”인지에 따라
뇌의 필터(RAS) 형광펜을 치는 정보가 바뀐다.
전자라면, 실패와 좌절의 증거들이 더 잘 보이고
후자라면, 기회와 가능성의 증거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Apex BPS는 바로 이 심리학 연구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내가 진짜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잘된 미래 시즌의 나를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본 버전.” “최선의 자기상”을 구체적으로 그릴수록 행동이 그쪽으로 미세하게 틀어지고, 그 미세한 틀어짐이 복리처럼 쌓여 나중에는 전혀 다른 세계선처럼 느껴지는 인생 루트를 만들어낸다.

5. 우리가 가져가면 좋은 것들
우리가 기억하면 좋을 건 사실 세 줄이면 충분하다.
1. Apex 자아
→ 지금까지 인생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가장 “아, 이게 나지” 했던 시즌의 나
2. Apex BPS
→ 변명과 핑계를 걷어냈을 때 내가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잘된 미래 시즌의 나 (건강·관계·일·자기 존중감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버전)
3. 지금의 나는 Apex가 아니다
→ “망했다(X)”가 아니라 “아직 덜 맞춰진 회차(O)”다. “지금의 너는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최고의 너와 주파수를 맞추는 법”을 아직 구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이런 자아들과 접속할 주파수 조율장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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