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맺힌 무언가를 풀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정신적으로 정체된 에너지로 곪아버립니다. 그 사람은 그 정체된 에너지를 다루려고 애쓰느라 성장하는 발전이 어렵게 됩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먼저 이 에너지를 뒤집어 리셋해야 합니다. 리셋하기 위한 방법을 크게 2가지로 나누어보았고, 당장 지금 처한 현실에 맞는 방법도 나열해 보았습니다.
1단계: 독백하기
사람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것에 대해 표현을 해야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표현하지 못한 분노를 엉뚱한 사람에게 퍼붓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경험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시간 약속에 늦을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옆에 차 운전자가 잘못한 건데 갑자기 창문을 열고 자신에게 욕을 했다고 합니다. 당장 차에서 내려 그 사람과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만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있기에 꾹 참고 가던 길을 가는 도중,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남편의 전화였고, 평소 같았다면 별수롭지 않게 알려줄 수도 있었을 것을, 그런 걸 왜 지금 묻냐고 갑자기 짜증을 냈다고 합니다. 아마 그것은 아까 표출되지 못했던 분노가 결국 터져 나온 결과일 것입니다. 이렇게 감정들, 특히 억울한 감정, 슬프고 불안한 감정, 심지어 기쁘고 자랑스러운 감정 까지 표출하고 싶은 것이 정상입니다. 그것을 억누르게 되면 그 감정은 발효가 되고 변형되며 계속 쌓입니다. 압력밥솥에 압력이 계속 차오르는 것처럼 꽉 차게 됩니다. 그 압력을 빼주지 않는다면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원래 압력밥솥은 조금씩 압력을 빼주는 장치가 있습니다. 적절한 압력을 유지해야 솥 속 내용물이 제대로 익으니까 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감정을 시기적절하게 표현해서 배출해 주어야 합니다. 평소에 그때그때 감정을 표출할 수 있어야 불편한 감정으로 변형되지 않습니다. 표출되지 못한 불편한 감정은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불길한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것은 실제보다 훨씬 더 크고 감당하기 어렵게 부풀려져 그 거짓된 크기에 당신은 압도될 겁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불안하고 우울하다거나, 아니면 다른 감정으로 힘들다면, 이제껏 이런 감정 표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했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아직까지도 제대로 표출해보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말"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이며, "말"로 구체화 함으로써 그 개념은 작아지게 됩니다.
무서운 생각과 두려운 느낌을 말로 담아낼 때 그 대상은 내가 감 잡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되고, 내가 대처할 수 있는지 없는 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그 순간 그 고민과 걱정은 풀리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글"은 말보다도 더 그 좁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뉘앙스와 억양, 목소리의 크기 같은 것이 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과 글은 누군가와 의사소통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혼자 일기를 쓰는 것보다,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납득할 수 있는 문장이 될 수 있도록 계속 그 상대방의 피드백을 실시간 모니터링 하면서 조절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물론 그 상대방이 내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길을 잘 터주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1) 첫째, 내 먹구름이 일단 문장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 자신이라는 필터를 거쳐 정형화됩니다. (2) 둘째, 다른 사람에게도 납득될 수 있도록 논리화하는(대화하는) 두 번째 필터를 거쳐 더 구체적으로 정형화됩니다. 그리고 그 정형화된 먹구름이 과연 먹구름이었는지, 솜사탕이었는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대화를 통한 치료의 한 원리입니다. 하지만 주위에 대화할 사람이 없거나, 있더라도 이런 의미 있는 피드백을 해줄 사람이 없다면 제1단계 필터부터 장착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신이라는 필터 말입니다. 나 스스로가 납득될 만한 먹구름인지 아닌지부터 한번 검증해 보는 것입니다. 먼저 글을 써봅니다. 양식은 없습니다. 뭐가 두려운 건지 두서없이 써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지어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일단은 한 단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나의 고민과 걱정의 대상의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실체를 드러낸 두려움으로 격하됩니다. 나는 심리적으로 조금은 더 안정될 수 있습니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주위에 나의 걱정과 고민을 말할 수 없다면 가상의 대상에게 나의 고민을 글로 적어 보낼 수 있습니다. 나를 수용해줄 누군가가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쓴다면 생각의 근육은 좀 더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작은 박스를 하나 정해서 나의 고민을 적어서 거기에 넣어버리고 잠시라도 잊어볼 수 있습니다. 고민을 적는 순간 나의 두려움은 작은 종이쪽지로 전락합니다. 상자는 종이쪽지를 가두고 쪽지 속 고민을 처리합니다. 자세히 적어줄수록 고민박스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커집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곧 일종의 의식( ritual) 입니다. 이런 의식이 지속될수록 내가 그 고민과 걱정을 글로 적는 과정 속에 무언가 변화가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심리적 변화가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압도되었더라도 일단 글을 쓸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쓰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민은 해결된다. 이 박스 안에서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는다.
고민박스 만드는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쓰되, 주로 동전 저금통 처럼 한번 종이를 접어 넣으면 다시 빼기 어렵게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고민을 가둔다는 의미입니다.
2단계: 누군가에게 말하기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정신적인 피로가 많이 쌓여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그 상담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상담"이라는 것조차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음의 고통과 고민은 의지로 이겨내야 할 것 같고, 누구의 힘을 빌린다는 것이 나약함의 상징으로 보일 게 두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나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내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결국 스스로 이겨내고 있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서도 근근이 잘 생활해 내고 있다면 결국 제3의 힘을 빌려 버티고 있는 셈입니다. 예를 들면 술의 힘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하며 억눌린 마음을 발산하기도 합니다. 술에 얼큰히 취해서 자기 고백을 하는 직장동료들에 대해 우리나라 직장문화는 비교적 관대합니다. 심지어 그걸 권장하기도 합니다. 가족 같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직장 문화도 한몫합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인간관계를 많이들 해결합니다. 술자리는 서로에 대한 오해도 풀고, 스트레스도 푸는데 특효약일 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해도 스트레스도 안 생기게 미리 예방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의 회식이나 술자리는 인간관계를 더 원활하게 한다는 취지가 있지만 냉정히 말하면 결국 개인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고민을 말할 수 있어도 어디까지나 일에 대한 개인적 이슈에 한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답은 내 안에 있지만 도와달라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 심리적으로 어려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공부에 소홀해지는 바람에 정신과 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난 내심 기대했습니다. 어떤 친구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처방으로 물리적이고 공식적인 조치가 취해지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그저 이 친구는 "정신병이 아니라 정상입니다"라는 진단만을 내려주었을 뿐입니다. 물론 나는 정신적으로 멀쩡했고, 다만 그 당시의 아픔을 겪어내는 일반적인 청소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상황이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 그 정신과 의사에게, 나의 아픔이란 그저 지나가는 상처에 불과하고, 그로 인해 대학입시에 실패해도 그건 그렇게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은 아니며, 성장하고 있는 한 사람의 청소년으로, 약 처방은 불필요했다는 사례에 불과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정신과 의사의 본연의 역할인, 정상범위 바깥의 이상심리를 가진 자의 감별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경험을 인생에 있어서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배움이란 이런 것입니다. 정신병이 아니라고 진단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뭐 어쩌란 것인지? 나는 정신질환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 깊숙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 대답을 꺼낼 힘이 없을 뿐입니다. 그것을 거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아픈 사람의 Sos는 사실 의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담사는 이것을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잡아냈다고 " 뭔지 알았습니다. 당신에게는 이게 필요합니다"라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SOS는 대체로 무의식이 보낸 것입니다. 의식이 그런 SOS를 싫어하기 때문에 은밀하게 온몸으로 증상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사가 이렇게 말한다면 의식은 저항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의식은 이게 좋다고 온몸의 증상으로 말하고 있지만 의식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상담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무의식을 거스르는 상담을 하게 되면 의식은 좋아할지 모르나 결국 무의식이 저항할 것입니다. 결국 이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아우르는 노련한 상담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담사는 이걸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깨닫게 해 주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그래야 스스로 저항하지 않고 자발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정신질환이 없습니다. " 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서 그걸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상담은 궁극적으로 필요합니다. 노련한 상담사에게는 그만큼의 비싼 수임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힘든 사람이 늘 돈이 풍부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도움은 끝까지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거금을 들여 상담을 받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마음이 매우 편해졌고, 그때 내가 닥친 어려움에 대해 뭔가 좀더 대응할 만큼의 심력을 가지게 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 상담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그 시절을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게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심리적 어려움을 야기한 행동은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심리적 위안이 나의 바람직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같은 문제는 반복되었습니다. 그 상담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기에 거기까지 개입이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습니다. 그 반복된 행동은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내가 그 당시에 부담스럽더라도 상담료를 지불하고 상담을 더 받았다면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건 악순환인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상담을 받지 못하고, 더 큰 손실로 이어지는 행동을 하고, 그리고 결국 솟아날 구멍조차도 돈 주고 사지 못합니다. 경미한 심리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즉 정신질환이 아닌 사람에게 개입 가능한 방법이 많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을 사람보다 진단 받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고, 세상은 대부분 이 사람들에 의해 굴러랍니다. 그 사회 구성원의 정신적 성숙도가 곧 그 사회의 성숙도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잘 기능하기 위해 사회자본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심리적 어려움을 함께 하겠다고 투신한 상담사들이 자기 비용으로 이들을 지탱하고 있고, 이들의 사명감으로 사람들을 버티게 해 줍니다. 정치인들은 나라가 이나마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들 상담사들에게 일말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상담 전문가에게 도움 받는 법
돈이 없다면
돈이 없어도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가정센터에 신청하면 상담을 받을 수가 있으며, 상담하는 분들은 대가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과 수련을 받은 믿을 수 있는 실력있는 분들입니다. 무료이기 때문에 대기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당 10회의 상담까지만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이 혜택은 주로 낮에나 가능합니다. 이 분들도 정부를 통해 일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아침과 오후, 즉 일반인들이 직장에서 일하거나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에만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지원으로 이 분들로부터 무료로 상담을 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역시 시간이라는 장벽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쓸 수 없다면..?
시간이 없다면
수련 상담가: 경험이 많은 심리전문가로부터 수련을 받고 있는 수련생들에게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격을 준비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상담료를 받지 않습니다. 장소대여비 약 10000원 정도만 준비하면 이들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분들의 상담효과가 좀 떨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가로부터 수련을 받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기 입으로 무언가를 말해내는 그 작업 자체만으로도 치료효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해내려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치료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상담수련을 위해 많은 클라이언트를 기꺼이 경험하고자 하므로, 저녁 상담시간도 오픈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낮 시간에 시간을 낼 수도 없고, 경제적으로 그렇게 풍족하지 않다면 이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상담수련 장소가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서울이나 경기도 근처에나 몰려있고, 지방에서는 띄엄띄엄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그럼, 이마저도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온라인 상담가: 상담문화가 매우 고도로 발전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이미 Skype 를 통한 화상상담이 새로울 것 없는 상담 방법으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상담을 talk therapy라고도 하는데 물론 대면 상담에 비해 한계는 있겠지만 대면상담 조차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런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온라인 상담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는 연구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사이코드라마같이 뭔가 행동적 상호작용이 필요한 경우의 상담과는 비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채팅 상담이나 이메일 상담도 좋은 방법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말을 하는 것보다 조금 더 논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조금 더 필터링되는 작용도 있겠지만, 그만큼 내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관점에서는 불안 심리도 서랍 정리하든 정리해서 확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일기 쓰기, 고민박스 쓰기와 같은 혼자서 하는 글쓰기로 치료효과를 보는 것과 더불어, 나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이런 활동들은 나의 마음이 왜 불편하고 힘든지 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런 활동들은 굳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즉각적입니다. 적어도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할 수 있으며, 마음먹기에 별다른 장애가 없는 방법입니다. 그러니 지금 스마트폰을 챙겨 당장 온라인 상담 창을 두드리거나, 금방 상담사가 답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메일이라도 보내보세요.
돈도 시간도 어중간하지만 숙련된 상담사에게 받고 싶다면
집단상담: 정말 심리전문가, 상담 대가에게서 상담을 받고 싶지만 비용 때문에 계속해서 받을 수 없다면 그 대가가 진행하는 집단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집단상담은 최소 16시간 연속으로 밤새 하거나, 1박 2일로, 무박 2일로 진행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들이 스스로 집단상담을 찾아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별로 없습니다. 집단상담을 가 보면, 상담수련생들이나 상담자가 자기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집단상담에 일반인들이 온다면 정말 상상 이상의 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상담사들이 참여하는 이런 집단상담에 일반인이 한 명 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상황에 대해 대단히 색다른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상담 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요? 나가서 알려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본인도 사실 주위 상담을 공부하는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효과는 일반 상담과 다릅니다.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각기 다른 아픔을 이야기하며 함께 상담자와 함께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은 다른 상담과는 매우 다른 효과를 냅니다. 아마 당신도 경험해 보면 이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돈도 시간도 모두 다 있다면
심리전문가: 부디, 돈을 내고 상담을 받으시길. 어느정도는 자신에게 적당하게 비쌀 때 효과가 있습니다. 가격만큼 상담가가 자신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높을수록 플라세보 효과가 있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플라세보 효과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정신치료, 심리상담에서는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플라세보 효과는 완전히 정신적, 심리적인 효과입니다. 우리는 지금 심리적인 재활성을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즉 플라세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즉 스스로를 위해서 돈을 내라는 뜻입니다.
라이프코치: 자신의 심리치유뿐 아니라 일상에서 스스로 원하는 어떤 습관을 만들거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 때 라이프 코치 서비스를 받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서비스가 별로 많지 않지만, 자격있는 코치들은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예산을 책정해 두고 기업이 비용을 지급합니다. 개인이 상담 아닌 코칭을 스스로 받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미국에는 라이프 코치를 사서 자신이 목표하는 그 무엇을 성취하는데 코칭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목표가 어떤 것이든, 얼마나 전문적인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라이프 코치는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 분야 전문가인 당신이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만 전문가입니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에게 자신의 자원을 투입하십시오. 그 목표는 구체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이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는 그것도 도와줄 것입니다. 자신의 자원을 투입하는 행위, 목표를 잡는 행위, 라이프 코치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위, 이 모든 움직임이 당신의 먹구름에 모양을 만들어 내 손에 잡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반은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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