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전기적 인간입니다. 이 특성을 이용해서 온몸을 배터리 충전시키듯 충전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배웠 듯, 모든 것은 원소(atom)로 이루어져 있고, 원소는 양전하(+)를 가진 양성자(proton), 음전하(-)를 가진 전자(electron), 그리고 중성자(neutron)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전하들 간에 균형이 깨지면 원소는 양전하나 음전하를 띄게 되고, 이에 따라 전자가 이동하면 우리는 이를 전기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은 엄청나게 큰 원소의 모임이므로, 전기를 발생시키며, 또 전기로 충전됩니다.
이 전기는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안정된 상태에서 세포막 안쪽에 음전하를 띄고, 바깥 쪽에 양전하를 띄고 있다가, 외부로부터 신호를 받으면 이 전하의 위치를 변형시켜 전기흐름을 만듦으로써 신체 곳곳에 명령을 내립니다. 이런 전기흐름은 몸의 체액을 따라 흐르는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동)에 비할 수 없는 즉각적인 명령과 반응을 만들어냅니다. 삶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평소에 내 몸의 세포가 제대로 된 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당신은 그저 형이하학적 생물입니다. 밥부터 먹어야 합니다.
인간은 다른 생물, 무생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그 동일한 자연계의 일부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일반적인 물리적 법칙, 자연의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인간이라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법칙을 따른다고 본다면 우리는 이런 자연법칙에 우리 자신을 편승시킴으로써 더욱더 쉽게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바닥난 순간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면 됩니다. 인간은 자기 몸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류가 통하는 전기적 인간입니다. 조금만 파워를 올려주면 스스로 에너지 발전소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영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형이하학적인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스스로를 zero 수준에서 진정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이제 무기력한 당신이 기력을 차릴 수 있는 방법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신선하고 풍부한 야채와 단백질이 가득 든 식사를 하세요. 이것은 제일 형이하학적인 수준의 에너지공급원이거든요.
2. 소진을 인정하고 휴식합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은 더 높은 레벨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힘없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금물입니다. 이건 돈 없는 사람에게 “돈 내!”라는 말이랑 똑같다고나 할까요?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괜찮아”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위로하는 사람이 안심시켜야 하는 짐까지 지우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힘든 사람들은 그런 저렴한 위로를 받느니 차라리 홀로 있는 걸 택합니다. 심리전문가에게 전문적인 공감과 위로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도움을 받으러 갈 만큼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려움을 겪기 전에는 에너지가 차 있고, 충분히 동기유발 되어 있고 더 힘내길 원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책을 읽고 배우며 좋은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균형이 필요하지요. 이런 과정 속에 무시되어 온 삶의 측면이 있다면 머지않아 이런 측면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무시된 나의 한 곳이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것이죠. 삶의 균형에 생긴 균열은 결국 조각나 무너지면서 이 균열을 때워내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자신 깊은 곳에서 나는 목소리를 무서워하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균형이 깨지고, 감당할 수 있는 안락지대에서 떠밀려 쫓겨나버리면, 더 이상, 동기유발을 하기 위해, 더 힘내기 위해 써왔던 모든 방법들이 작동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잘못된 방법이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측면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노력할 힘이 소진되고 나면, 다 내려놓고 인정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방법이 맞지 않았던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겠다. 다 받아들이겠다. 더 이상 슬퍼하지도 않겠다. 이게 바로 내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수준이다.” 에너지는 바닥상태로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모든 노력을 포기합니다. 그냥 모든 것을 인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냥 모든 것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멍히 바라봅니다.
진정한 휴식의 시작
이때 갑작스리 마음이 평온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먹구름의 실체가, 자기 자신의 실체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에너지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아주 조금씩 말이죠. 그리고 에너지가 어느정도 쌓이면, 살짝 정신적인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좀 울컥한다고나 할까요? 지금 당장 지구가 끝장나는 것이 아닌데도 괜히 나 자신만 힘든 것 같아서 억울해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만약 지구가 끝장이 나버린다면, 그때까지 내게 남은 것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신기한 것은, 자신이 힘을 뺀 건지, 아니면 힘을 소진해서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을 그 지경으로 몰고 갔던 상황들이 동시에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외부 상황까지 말이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해지기도 합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필연처럼 그 일들이 동시적으로 일어납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심리 치유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당히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 원리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걸 논하자는 것이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세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통찰해야만 치유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먹구름의 실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죠.
3.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결국 먹구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됨으로써, 즉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변하게 되면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변하기 시작하고, 주위에서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변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세상이 바뀌는 메커니즘입니다. 결국, 자기자신이 외부 상황에 중요한 변수였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모든 힘든 외부 환경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안 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었겠지만 뼛 속까지 느끼지는 못했던 겁니다. 직면하기에는 너무 아픈 경험이니까요. 아는 것과 깨달은 것은 다릅니다. 하지만 명확해집니다.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요. “내가 변하니 세상이 변한다는 말은 진실이다. 내 가치관이 달라지니 편안해지더라 정도가 아니라, 세상은 실제로, 진실로 변한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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